스티븐
잡스가 최적의 크기의 스마트 폰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처럼 스마트 폰은 나의 한 손에 꼭 잡혀서 하루에도 수도 없이 나와 눈을 마주친다. 나와 지내는 시간을 비교해 보면 목욕하는 시간 외에는 항상 내 옆에 있으니 이미 내 아내나 아이들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최근에는 알람 기능으로 밤에도 나와 같이 지새운다. 이메일, 연락처, 일정, 각 종
예매, 뉴스 시청, 음악 감상, 전자 책, 메신저 등 그 기능을 다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이렇게 중요한 스마트 폰도 나와 같이 있었던 기간은 겨우 3년이지만
이제는 없으면 아무일 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만약에 스마트 폰이 내게 없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조선시대의 수필 중, 바늘이 부러지자 이를 애도하는 내용인 “조침문”을 생각하면 바늘을 스마트 폰으로 대체하면 그 내용이 구구절절
공감이 갈 듯도 하다. 그런데, 바늘이 없다면 대체가 불가능하겠지만
스마트 폰이 없다면 우리는 어떨까 하는 생각에 지난 기억을 되살려 보면, 최근의 스마트폰과 같은 iphone이 최초로 출시된 것은 불과 5년전 2007년이고 대중화된 3G 모델이 나온 것은 2008년부터이다. 불과 4~5년
사이에 이렇게 스마트 폰에 길들여진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변화에도 놀랍고 또 한번 스티브 잡스의 위대함에 감탄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스마트 폰 때문에 무언가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지난 15년간 이상을
매년 수첩에 약속을 메모하고, 지인들의 연락처를 적고, 그
해에 하고 싶은 목표들을 정리해서 나중에 스스로를 평가해보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 해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수첩을 보면서 되돌아 보기도 하고, 아련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빙그레 웃기도 했었다. 한번 쓰면 쉽게 고칠 수 없기에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된 글을 적었던 수첩에 비해 스마트 폰은 일단 입력하고
언제든지 편집할 수 있기에, 폰은 스마트해졌지만 대신 사용자는 점점 스마트할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스마트 폰에서는 지난 기록도 잘 정리되어 있고 모든 연락처도 더 잘 관리되고 있지만, 지난 기록을 되돌려 보는 경우는 스마트 폰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도
내 책상 서랍을 열면 10년 전의 수첩을 언제든지 꺼내서 볼 수 있지만, 스마트 폰에서는 지난 일정을 보기 위해 날짜를 돌리다가 귀찮아서 멈춘다. 과연
스마트 폰에 자신의 10년전 일정을 동기화할 사람이 있을까 하고 질문해보면 스마트 폰의 보관기능은 그리
장기간 믿을 게 못 된다. 지인들의 연락처도 수첩을 통해서는 변천사를 알 수 있지만 스마트 폰은 항상
새 것만 알려준다. 마치 Data warehouse에서 시계열성(time variant)속성을 수첩은 갖고 있지만, 스마트 폰은 없다. 어느 개그맨이 “1등만 기억하는 …“처럼 지금의 스마트 폰은 동기화라는 미명하에 지난 기록은 언제든지 덮어버리고 가장 최근의 기록만 유지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수첩이 스마트 폰보다 좋은 기능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니 재미있기도 하다.
나의 지난 수첩 중에는 끈적거리는 일회용 커피에 목욕을 한 녀석도 있고, 반쯤눌려서 접힌 녀석도 있다. 애플과 삼성이 아직 해내지 못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자못 흥미롭기도
한다. 10년전에 내가 사용했던 수첩은 소중히 간직되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교체한 스마트 폰을 다시 켜보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쥐꼬리만한 보상금에 팔아버린
경우가 더 많다. 스티브 잡스의 2007년 스탠포드 졸업식에서의
연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마지막에 반복한 “Stay hungry, Stay foolish”를
떠올려보면 저 문구에 맞는 도구는 아마도 스마트 폰보다는 수첩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나
보니 24시간 Working Office가 되어준 스마트
폰이 이제는 고마운 존재에서 얄미운 존재로 느껴진다. 그 동안 멀리했던 내 수첩을 다시 가까이 하기로
하면서, 10년 후에도 수첩과 스마트 폰을 한 번 더 비교해 보아야지 하면서 수첩에 적어보았다. 혹 제가 10년 후에도 수첩을 지금처럼 잘 쓰고 있을 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신다면, 10년 후에 저에게 확인하겠다는 내용을 스마트 폰의 일정관리에 적어 넣어 보시길 ……
2012. 4. 홍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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